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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불이 타오르고, 물이 흐르는 날들

by 양파 까는 양파쿵야 2026. 1. 10.

자연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와 인간의 오래된 약속, 비가 내리고, 불이 타오르고, 물이 흐르는 날들을 위한 축제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축제의 중심에 사람이 서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대신 비가 내리고, 불이 타오르며, 물이 흐릅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주인공이 되기보다 관찰자가 되고, 참여자가 되기보다 기다리는 존재가 됩니다. 전 세계 곳곳에는 이렇게 자연 요소 자체가 중심이 되는 축제들이 있습니다. 이 축제들은 인간의 기쁨을 과시하기보다,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를 조용히 드러냅니다. 사진 없이도 장면이 떠오르는 이유는, 이 축제들이 시각보다 감각과 기억에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고, 불이 타오르고, 물이 흐르는 날들
비가 내리고, 불이 타오르고, 물이 흐르는 날들

비를 기다리고, 비를 맞이하는 축제

인도의 테이얌(Theyyam)이나 케랄라 지역의 몬순 축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축제의 일정이 아니라 하늘이다. 이 지역의 많은 축제는 정확한 날짜보다 비가 오는 시기에 맞춰 열린다. 비가 시작되지 않으면 축제도 시작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비를 통제하려 하지 않고,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 축제에서 비는 방해물이 아니다. 오히려 초대받은 존재다. 젖은 땅 위에서 춤이 이어지고, 진흙이 튀는 바닥에서 의식이 진행된다. 비는 불편함을 주지만, 동시에 생명을 약속한다. 농경 사회에서 비는 곧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축제는 즐거움보다 감사의 성격이 강하다.

비를 중심에 둔 축제에서 인간은 작아진다.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를 만들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받아들인다. 축제는 비가 내리는 동안만 유지되고, 비가 멈추면 서서히 흩어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느낀다. 이 축제는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불을 태우며 두려움과 바람을 함께 놓아주는 날

불은 많은 문화에서 양면적인 존재다. 파괴와 정화,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상징한다. 스페인의 라스 파야스(Las Fallas)나 스코틀랜드의 업 헬리 아(Up Helly Aa) 같은 축제에서 불은 가장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불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라스 파야스에서 수개월 동안 정성 들여 만든 인형을 태우는 행위는 낭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축제에서 중요한 것은 ‘없애는 행위’다. 불은 한 해의 불운과 불안을 태우는 도구로 사용된다. 사람들이 불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환호와 함께 묘한 침묵이 섞여 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순간을 기다린다.

불을 중심으로 한 축제에서 인간은 결단하는 존재가 된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태울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은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이다. 그래서 불 앞에서는 개인의 감정이 집단의 감정으로 확장된다. 불꽃이 사라지고 재만 남았을 때, 사람들은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끝났다는 감각,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감각.

물 위에 소원을 띄우는 순간의 침묵

태국의 로이크라통(Loi Krathong), 인도의 갠지스 강 의식, 일본의 도로나가시(灯籠流し) 같은 축제에서 물은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흐른다. 사람들은 작은 배나 등불, 꽃을 물 위에 띄운다. 그 안에는 소원, 사과, 기억, 추모가 담긴다.

이 축제의 인상적인 점은 소음이 적다는 것이다. 물은 사람처럼 환호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고 흘려보낼 뿐이다. 사람들은 물 앞에서 자연스럽게 조용해진다. 축제이지만, 동시에 의식에 가깝다. 이때 인간은 자연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기보다, 이미 많은 것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물 중심의 축제는 인간의 통제 욕망과 거리가 멀다. 흐름을 바꿀 수 없고, 머무르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 축제들은 보내는 행위에 가깝다. 지나간 시간, 지나간 사람, 지나간 감정을 물 위에 올려놓고 흘려보낸다. 축제는 끝나지만, 물은 계속 흐른다.

 

비·불·물 같은 자연 요소가 중심인 축제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을 축소시킨다. 사람들은 무대의 주인공이 되지 않고, 자연의 리듬에 맞춰 움직인다. 일정은 바뀔 수 있고, 계획은 어긋날 수 있으며,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이 축제들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축제는 놀이를 넘어 관계의 확인이 된다. 우리는 여전히 자연에 의존하고 있고, 자연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오래된 진실을 다시 체감한다.

사진 없이도 이 축제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장면이 아니라 감각이 남기 때문이다. 젖은 공기, 타는 냄새, 물 위를 떠다니는 불빛. 이 감각들은 이미지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자연이 중심인 축제는 말한다.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잠시 그 안에 머무는 존재라고.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해마다 같은 날에 다시 모여 비를 맞고, 불을 태우고, 물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