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장과 가면 뒤에서 드러나는 어른들의 진짜 얼굴, 오늘은 아이보다 어른이 더 신나는 축제들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축제는 흔히 아이들의 것처럼 여겨집니다. 화려한 색, 소리, 웃음. 하지만 실제로 많은 축제 현장을 보면, 가장 열광하는 쪽은 오히려 어른들입니다. 아이들은 주변을 구경하는 데 그치지만, 어른들은 변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 답은 축제가 제공하는 일시적인 해방감과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에 있습니다.

가면을 쓰는 순간, 느슨해지는 사회적 자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카니발(Carnevale di Venezia)은 가면 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축제에서 사람들은 얼굴을 가리고 거리로 나온다.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신분이나 직업도 중요하지 않다. 이 익명성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심리적 장치다.
심리학적으로 가면은 ‘탈억제 효과’를 만든다. 평소에는 억제되던 행동과 감정이, 정체성이 가려진 상태에서는 비교적 안전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은 원래 억제가 적다. 하지만 어른은 다르다. 규칙과 책임 속에서 살아온 어른에게 가면은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허락처럼 작용한다.
베네치아 카니발에서 특히 열광하는 사람들이 성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아이처럼 변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른으로서의 무게를 잠시 벗기 위해 가면을 쓴다. 가면은 숨기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숨겨왔던 감정을 꺼내는 장치다.
변장은 놀이가 아닌 해방의 언어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을 떠올리면, 화려한 의상과 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축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이보다 어른의 참여도다. 수십 시간 동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주체는 대부분 성인이다.
변장은 이 축제에서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 경제적 조건, 일상의 정체성을 모두 지워버리는 상징이다. 평소에는 회사원, 부모, 책임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이 기간 동안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심지어 ‘과장된 모습’일수록 더 환영받는다.
아이들은 이미 자유롭기 때문에 굳이 변장을 통해 해방될 필요가 없다. 반면 어른들은 변장을 통해서만 허락되는 자유를 경험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이 시간을 더 강렬하게 즐긴다. 변장은 놀이의 도구가 아니라, 억눌린 자아가 숨을 쉬는 언어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체험하는 어른들
스페인의 라 토마티나(La Tomatina), 일본의 하다카 마쓰리(裸祭り) 같은 축제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규칙은 단순하고, 행동은 다소 과격하며, 평소라면 허용되지 않을 행동들이 축제라는 이름 아래 가능해진다.
이때 어른들이 느끼는 즐거움은 단순한 재미가 아니다. 그것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를 잠시 체험하는 감각이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태, 평가받지 않는 상태, 효율을 따지지 않는 상태. 아이들은 그 상태가 일상에 가깝지만, 어른에게는 거의 사라진 감각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축제에서 유난히 진지해진다. 열심히 놀고, 온몸으로 참여한다. 이 시간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의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축제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알면서도, 그 짧은 시간에 최대한 몰입한다.
아이보다 어른이 더 신나는 축제는, 어른이 아이보다 더 축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이는 이미 자유롭지만, 어른은 자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축제는 그 자유를 안전하게 되찾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가면과 변장, 과장된 행동은 모두 어른이 사회와 맺어온 관계의 반대편에 있다. 그래서 축제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심리적 균형을 맞추는 장치가 된다. 우리는 축제를 통해 잠시 아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감각을 회수한다.
아이보다 어른이 더 신나는 축제들. 그곳에서 우리는 어른의 얼굴이 아니라,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축제를 기다려왔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