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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음악, 그리고 의식이 만드는 세계의 축제들

by 양파 까는 양파쿵야 2026. 1. 9.

'축제' 하면 음식, 술, 폭죽 등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하지만 술이 없어도 사람들은 충분히 열광하죠. 오늘은 춤과 음악, 그리고 의식이 만드는 세계의 축제들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축제와 술은 흔히 한 세트처럼 여겨집니다. 맥주잔이 부딪히고, 취기가 오르며, 흥이 폭발하는 장면은 많은 축제 이미지를 대표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의 모든 축제가 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술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핵심이 아닌 축제들도 많습니다. 이 축제들에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알코올이 아니라 리듬, 반복, 집단적 움직임, 그리고 오래된 의식입니다. 술 없이도 충분히 열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라 생각합니다.

춤과 음악, 그리고 의식이 만드는 세계의 축제들
춤과 음악, 그리고 의식이 만드는 세계의 축제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축제의 리듬

브라질의 카포에이라 헤젤라(RODA de Capoeira)는 겉으로 보면 공연이나 무술 시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축제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립니다. 사람들은 원을 이루고 서서 두 명의 움직임을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손뼉을 치며, 또 누군가는 악기를 연주합니다. 이 모든 요소는 중심에서 움직이는 두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원 안에 있는 모두를 위한 리듬 장치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잘 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리듬에 몸을 맡기느냐죠.

이곳에서 열광은 머리로 판단하기 전에 몸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음악이 시작되면 발끝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손은 자연스럽게 박자를 맞춥니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이유는 반복되는 리듬이 신체의 기본적인 반사 작용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박자와 반복되는 선율은 사람들의 호흡과 심장 박동을 점점 비슷하게 만듭니다. 이 상태에 들어가면 흥은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신체 반응이 됩니다.

세네갈의 사바르 축제(Sabar Festival)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드럼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감상하지 않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받는다’. 드럼의 강한 타격에 맞춰 몸이 튀고, 리듬이 빨라질수록 움직임도 거칠어집니다. 술이 없기 때문에 감각은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소리 하나하나가 더 직접적으로 전달됩니다. 몸의 무게, 근육의 긴장, 땀이 맺히는 감각까지 모두 선명합니다.

이런 축제에서 중요한 것은 흥분이 아니라 몰입입니다. 취기가 주는 해방감은 순간적이지만, 리듬이 만들어내는 몰입은 더 깊고 지속적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음악에 완전히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쾌감을 느낍니다. 술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 더 붙잡혀 있고, 그 상태가 열광으로 이어집니다. 이 축제들은 말해줍니다. 인간은 원래 리듬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라고.

의식이 만드는 집단적 몰입

술 없이도 강한 열광이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핵심은 ‘의식’입니다. 인도의 나바라트리(Navaratri)는 단순한 춤 축제가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가진 의식의 연속입니다. 9일 동안 이어지는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매일 밤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춤을 반복합니다. 가르바와 단디야 라스는 즉흥적으로 몸을 흔드는 춤이 아니라, 정해진 방향과 구조를 가진 움직임입니다. 원을 이루고 돌며 발을 구르고, 손에 든 막대를 부딪히는 동작은 수없이 반복됩니다.

처음 참여한 사람에게는 이 반복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반복은 생각을 비워냅니다. 다음 동작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고, 대신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과 음악에 더 민감해집니다. 수백 명이 동시에 같은 박자에 반응할 때, 개인의 리듬은 점점 사라지고 집단의 흐름만 남습니다. 이 순간에 발생하는 몰입은 술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종류의 집중입니다.

일본의 아와 오도리(Awa Odori) 역시 의식적 반복이 만들어내는 열광을 보여줍니다. “춤추는 바보, 보는 바보”라는 말처럼, 이 축제에서는 춤의 완성도나 실력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거리를 행진하는 과정에서, 참여하는 순간 이미 축제의 일부가 됩니다. 술이 없어도 사람들은 웃고, 땀을 흘리며, 서로의 리듬에 동화됩니다.

이런 축제에서 열광은 개인의 감정 폭발이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이 사라지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나’라는 감각이 흐려지고, 대신 ‘우리’라는 흐름 속에 들어갑니다. 의식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반복과 규칙은 자유를 제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합니다. 술 없이도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이 의식이 이미 충분히 강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술이 빠졌을 때 드러나는 축제의 본질

술이 없는 축제는 종종 조용하고 차분할 것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폭이 더 넓고, 밀도 또한 훨씬 높습니다. 태국의 위사카 부차(Vesak)에서는 사람들은 술잔 대신 촛불을 들고 사원을 돕니다. 말소리는 거의 없고, 음악도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침묵을 유지하는 장면은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내죠.

이 열광은 소란스러운 흥이 아니라, 공동의 집중에서 나옵니다. 모두가 같은 의미를 알고 있고, 그 의미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감각이 사람들을 묶습니다. 술이 없기 때문에 감정은 흐트러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게 가라앉습니다. 누군가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오래된 다짐을 떠올립니다. 이 모든 감정이 한 공간 안에서 동시에 존재합니다.

페루의 인티 라이미(Inti Raymi) 역시 술보다 의식과 재현이 중심입니다. 사람들은 축제를 소비하기보다, 하나의 역사적 순간에 참여한다는 감각을 느낍니다. 음악, 의상, 동작 하나하나에는 상징이 있고, 관객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며 감정을 쌓아갑니다. 이때의 열광은 취기로 인한 흥분이 아니라, 의미를 공유하는 데서 오는 고조입니다.

술이 빠진 자리에서는 축제가 무엇으로 작동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리듬, 반복, 상징,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함께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자각 등. 이 요소들이 충분히 작동할 때, 술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술이 없기 때문에 축제는 본래의 얼굴을 드러냅니다. 함께 움직이고, 함께 집중하고, 함께 느끼는 것. 이것이 축제가 가장 오래된 형태로 존재해온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술 중심의 축제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술이 빠진 자리에서도 사람들은 충분히 뜨거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오히려 술이 없기 때문에, 열광의 원천이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음악일 수도 있고, 몸의 움직임일 수도 있으며,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의식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축제들은 말합니다. 인간은 본래 리듬에 반응하는 존재이고, 반복과 공동체 속에서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존재라고. 술은 그 과정을 빠르게 만들 뿐,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술 없이도 열광하는 세계의 축제들은, 우리가 흥을 느끼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다양성 속에서, 축제의 가장 오래된 목적—함께 움직이고, 함께 느끼는 것—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