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열리면 나타났다가, 끝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공간의 이야기. 오늘은 며칠 동안만 존재한 도시들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도시를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에 찍혀 있고, 주소가 있고, 언제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장소. 하지만 전 세계에는 하루 혹은 며칠 동안만 존재했다가 완전히 사라지는 도시들이 있습니다.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만 만들어지고, 끝나면 철거되는 공간들입니다. 이 도시들은 영구적인 건축물보다 임시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고, 주민보다 참가자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이 공간들은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도시가 세워지는 순간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열리는 버닝맨(Burning Man) 축제는 ‘임시 도시’의 가장 극적인 사례다. 축제가 시작되기 전, 그곳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일 뿐이다. 도로도, 건물도, 상점도 없다. 하지만 축제가 시작되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블랙 록 시티(Black Rock City)라는 도시를 만든다.
이 도시는 단순한 캠핑장이 아니다. 격자형 도로가 만들어지고, 이름이 붙은 거리들이 생긴다. 카페, 병원, 예술 공간, 공연장이 자발적으로 세워진다. 화폐 사용이 금지된 대신, 사람들은 물건과 도움을 나눈다. 이 도시의 모든 것은 ‘잠시 존재할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만들어진다. 그래서 더 자유롭고, 더 실험적이다.
축제가 끝나면 참가자들은 모든 구조물을 철거한다.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는 것이 이 도시의 원칙이다. 며칠 전까지 사람이 가득했던 공간은 다시 사막으로 돌아간다. 지도에도 남지 않고, 건물의 흔적도 없다. 하지만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분명히 ‘도시’가 존재한다.
축제 기간에만 열리는 시장과 마을
인도 북부에서 열리는 쿰브 멜라(Kumbh Mela)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축제 중 하나다. 이 축제가 열릴 때면 강가에 거대한 임시 도시가 만들어진다. 텐트로 된 숙소, 임시 도로, 병원, 화장실, 식당까지 갖춘 이 공간은 수백만 명을 수용한다.
이 도시의 특징은 철저히 기능적이라는 점이다. 영구 건물이 아닌, 모두 철거를 전제로 한 구조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축제가 끝나면 강변은 다시 평범한 자연 공간으로 돌아간다. 이곳에서 도시는 ‘정착’이 아니라 ‘순환’의 개념에 가깝다. 필요할 때 나타났다가, 역할을 다하면 사라진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기간 동안 뮌헨의 테레지엔비제 광장은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한다. 평소에는 넓은 공터에 불과한 이곳은 축제 기간 동안 거대한 맥주 텐트와 놀이시설로 가득 찬다. 각각의 텐트는 하나의 작은 마을처럼 기능하며, 내부에는 음악과 음식, 규칙이 있다. 축제가 끝나면 이 모든 구조물은 해체되고, 광장은 다시 텅 빈 공간이 된다.
사라지기 때문에 더 선명해지는 공간의 기억
이런 임시 도시들이 특별한 이유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구적인 도시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축제로 만들어진 도시는 “지금 아니면 경험할 수 없다”는 감각을 준다. 이 한정성은 사람들의 태도를 바꾼다.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공간을 사용하고, 더 빠르게 관계를 맺는다. 버닝맨의 참가자들이 낯선 사람과 쉽게 대화를 나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도시는 곧 사라질 것이고, 이 만남 역시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간의 유한함이 인간 관계의 밀도를 높인다.
축제가 끝난 뒤, 그 장소를 다시 찾았을 때 느끼는 감정도 독특하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공간을 바라보며, 우리는 방금 전까지 존재했던 도시를 떠올린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머릿속에는 분명한 지도와 장면이 남아 있다. 이때 공간은 물리적인 장소를 넘어 기억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하루 혹은 며칠만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도시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도시는 건물로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사람으로 이루어지는가. 주소와 행정구역이 있어야 도시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모여 역할을 나누는 순간부터 도시일까.
축제 기간에만 열리는 공간들은 말한다. 도시는 반드시 영구적일 필요가 없다고. 필요할 때 생겨나고, 역할을 다하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충분히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그래서 이런 도시들은 축제가 끝난 뒤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지도에는 남지 않지만,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 어쩌면 가장 인상적인 도시는, 가장 오래 존재한 도시가 아니라 가장 선명하게 사라진 도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