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즐거운 축제인데 사실은 기도에서 시작된 날들, 즐거움 뒤에 숨겨진 진지한 시작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축제를 떠올릴 때 먼저 색과 소리를 생각합니다. 음악, 춤, 불꽃놀이, 웃음.
축제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의 많은 축제는 처음부터 즐겁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어떤 축제는 비를 빌기 위해, 어떤 축제는 죽은 이를 기억하기 위해, 또 어떤 축제는 재앙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도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축제는 밝은 얼굴을 갖게 되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진지한 감정이 흐르고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시작된 축제
멕시코의 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은 오늘날 가장 화려한 축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거리에는 해골 분장을 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선명한 색의 꽃과 장식이 도시를 가득 채운다. 처음 이 축제를 접한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죽음을 이렇게 밝게 표현할까?” 하지만 이 질문은 망자의 날을 ‘축제’로만 바라볼 때 나오는 반응이다.
이 날의 중심은 거리보다 집 안에 있다. 가족들은 집 안에 제단을 차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의 사진을 올린다.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과 물, 촛불을 놓고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이 의식은 죽음을 부정하거나 잊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 망자의 날은 죽은 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날이자, 남은 사람들이 기억을 이어가는 날이다.
일본의 오본(お盆) 역시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여름에 열리는 오본은 조상의 영혼이 집으로 돌아온다고 믿는 불교적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일부 지역에서는 춤과 불빛이 더해져 축제 분위기가 강해졌지만, 많은 가정에서는 여전히 조용히 제사를 지내고 조상의 이름을 부른다. 웃음이 없는 시간, 음악이 멈춘 순간에도 이 축제는 계속된다.
이처럼 죽음에서 시작된 축제들은 공통적으로 ‘잊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밝은 장식과 웃음 뒤에는 상실을 견디는 방식이 있다.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 슬픔을 밀어내기보다,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왔다.
재앙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기도
스페인의 라스 파야스(Las Fallas)는 거대한 인형을 불태우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불길 속에서 인형이 무너지고, 폭죽이 터지며, 도시는 환호로 가득 찬다. 관광객에게는 하나의 장관이지만, 이 축제의 시작은 훨씬 현실적이고 절실했다. 겨울이 끝나기 전, 사람들은 불운과 재앙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불을 피웠다.
불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정화의 의미를 가진다. 오래된 것, 불안한 것, 지나간 실패를 태워 없애고 새 계절을 맞이하겠다는 의지다. 그래서 라스 파야스의 불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단순한 흥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환호 속에는 한 해를 무사히 넘기고 싶다는 집단적인 기도가 섞여 있다.
인도의 홀리(Holi) 축제도 마찬가지다. 색을 뿌리며 자유롭게 어울리는 모습만 보면 그저 즐거운 행사처럼 보이지만, 그 시작에는 악을 몰아내고 선의 승리를 기원하는 종교적 의식이 있다. 홀리 전날 밤에 피우는 불은 악을 상징하는 존재를 태워 없앤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 불이 꺼진 뒤에야, 사람들은 색을 뿌리며 웃고 춤춘다.
이 축제들에서 즐거움은 결코 먼저 오지 않는다. 먼저 기도가 있고, 그 다음에 해방이 있다. 사람들은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의식을 통해 다루고, 그 후에야 마음껏 즐긴다. 축제는 재앙을 잊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앙을 견뎌내기 위한 준비였던 셈이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진지함’
많은 축제는 시간이 흐르며 형태를 바꾼다. 관광 자원이 되고, 상업적인 요소가 더해진다. 하지만 그 시작에 담긴 진지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태국의 로이크라통(Loi Krathong) 축제는 강에 등을 띄우는 낭만적인 장면으로 유명하다.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등불은 사진으로 담기 좋은 풍경이 된다.
하지만 이 축제의 기원은 물의 신에게 감사를 전하고, 한 해 동안의 잘못을 씻어내기 위한 의식이다. 사람들은 등을 띄우며 소원을 빌지만, 동시에 사과하고 다짐한다. 형식은 가벼워졌을지 몰라도, 마음속에서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축제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선택한 방식이다. 죽음, 자연재해,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사람들은 모여 기도하고, 의식을 만들고, 시간을 정했다. “이 날만큼은 함께하자”는 약속이 축제가 되었다.
그래서 축제는 아무리 밝아 보여도 묘하게 진지하다. 웃음소리 사이로 조용한 기도가 흐르고, 불꽃놀이 뒤에는 간절함이 남아 있다. 축제는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진지함 덕분에, 축제는 수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
즐거움은 변해도, 기도와 추모의 마음은 형태를 바꿔 계속 남는다. 축제란 결국, 인간이 살아가며 반복해온 가장 오래된 대답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축제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불안과 상실,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이다. 즐거운 겉모습은 시간이 만들어낸 외피일 뿐, 그 안에는 여전히 진지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시간을 견뎌왔는가”, “앞으로도 괜찮을 것인가”.
축제의 기원을 알고 나면, 그 풍경이 다르게 보인입니다. 웃음소리 사이에서 조용한 기도를 떠올리게 되고, 불꽃놀이 속에서 누군가의 간절함을 상상하게 됩니다. 축제는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축제는 아무리 밝아 보여도, 묘하게 진지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진지함 때문에 축제는 수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즐거움은 변해도, 기도와 추모의 마음은 형태를 바꿔 계속 남습니다. 축제란 결국, 인간이 살아가며 반복해온 가장 오래된 대답 중 하나인지도 모릅니다.